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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1 09:08 - 잡치기

역사는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텔링

 

 

역사는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텔링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


요즘 청소년들의 역사 인식을 두고 말이 많다. 이른바 '일베'로 대표되는 정신나간 역사관을 규탄하는 소리들이 지상파 토론 프로그램을 장식했다. 역사교과서의 내용이 문제다, 역사 교육의 방법이 문제다, 암기를 유발하는 평가방식이 문제다, 아니다 다 필요 없고 이것도 그 죽일 놈의 컴퓨터 게임 탓이다 등등 진단도 가지각색이다. 지금 역사교육이 문제가 되는 건, 교육내용 따지기 전에 역사교육의 비중 자체가 자살적이기 때문이다. 안 가르쳤다는데, 뭐.

 

소위 보수는 소위 진보 성향의 역사 해석에 경기를 일으키고, 소위 진보는 소위 보수 성향의 역사 해석에 게거품을 문다. 뭐가 옳은 걸까?

 

 

< 누군가에 의해 조율된 안경이 아니라, 좀 어지럽더라도 이런 안경을 써야 입체감이 산다 >

 

 

사실 진보와 보수는 변화의 속도에 관한 상대적 개념이다. "너네 아버지 참 보수적이다." 정도의 경험적 느낌이면 충분하다. 프랑스 의회까지 거슬러올라가 알아먹도 못할 정치사 들먹이지 않아도 인식에 별 문제 없단 얘기다. 변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리면 보수, 상대적으로 빠르면 진보다. 기존 체제가 자본주의인 상황에서 사회주의는 당연히 변화의 속도가 빠른 편에 속하니 진보가 되었던 거다. 다짜고짜 좌파, 우파 머시기 저시기 업자용어들 따지고 들어가면 우리 문외한들은 골치만 아프다. 나랑 무슨 관련이 있는가를 탐구해가면 그만이다. 자연스레 자기만의 감각이 생긴다. 인간은 토털뷰가 불가능하기에 본인이 선 좌표에 따라 중간의 위치 또한 달라진다. 그래서 그 <감각>이 중요한 거다. 그건 배운다기보다 저대로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내는 과정에 가깝다. 그러니까 진보, 보수 그딴 거 상관없다. 그게 무슨 법칙도 아니고 공식도 아니다. 세상을 좀 더 편하게 인식하기 위해 사람들이 편의상 묶어놓은 정체모호한 도구일 뿐이다. 누가 명찰이라도 달아주던가? 보수지수 평가시험이라도 따로 치던가? 박통의 친일행적까지 숭배한들, 북한의 인권탄압까지 찬양한들 읽어 유익하다. 위험한 것은 편식이지, 세상에 위험한 지식은 없다.


극과 극을 음미하는 것은 역사를 즐기는 하나의 방편이다. 중도도 따지고 들면 또하나의 극에 불과하다. 거짓과 거짓이 부딪혀 서로의 거짓됨을 상쇄시킬 때. 진실이라는 여전히 곱씹어볼 안주거리 하나 뽑는 셈이다. 역사해석은 교과서 만드는 선생들이 하는 게 아니라, 역사가가 하는 게 아니라, 시민 개개인이 하는 거다.

 

 

< 삶은 매 순간 텅빈 표지판, 틀리더라도 스스로 판단하는 연습이 감각을 기르는 최고의 지름길이다 >

 

 

그러니 약간 결함이 있더라도 절망할 필요 없다. 언제는 안 그랬나. 시급한 건 역사교육의 비중을 확대해서 개개인의 역사 인식 기회를 넓히는 일이다. 다양한 기회가 쌓이면 하나의 극단에 완전히 몰두해보기도 하고, 여러 극단 사이로 센터링 한번 띄워보기도 하면서, 자신의 프레임을 수정해간다. 언젠가는 스스로 붓 들고 전체 지도를 그려낸다.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는 히스토리

 

< 영화 '미션'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 >

 

 

1. 헤드셋 음량 만땅 놓고 넬라판타지아 들으면 눈물이 찔끔 난다. 오묘한 화음들이 감성을 뒤흔드는데, 이 아름다움엔 불안이 내포되어 있다. 불안을 동반한 감동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가장 격하게 흔든다. 원주민의 위협에 목숨이 위태로운 불안이 멜로디를 훨씬 아름답게 만드는 지렛대였듯.

 

2. 클래식은 잘 모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새로운 선율만 흐르면 귀에 착 감기지 않는다. 메인 선율은 다른 화음과 형태로 반복된다. 같은 선율이라도 합주되는 악기의 종류와 숫자가 매번 다르고 템포와 강약도 달라진다. 반복되지만 한순간도 똑같은 날이 아닌 우리의 매일처럼. 비슷하지만 같지 않은. 처음이지만 완전히 새롭지는 않은. 일상의 변주. 멜로디의 윤회. 사상의 불일불이.

 

3. 역사는 반복되지만 같지 않다.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각본 없는 드라마지만, 그 스토리들의 원형은 이미 수없이 반복됐다. 예나 지금이나 케이스 스터디를 유용한 방법론으로 채택하는 이유다. 모든 시대는 불안하다. 2000년대든 1900년대든. 결말을 알 수 없는 리스크는 불안을 야기한다. 불안 속에서 변주된 역사를 발견하는 순간은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꿈을 향해 모든 걸 걸었던 우리 할매할배들의 사투는 어떤 대곡보다 뭉클하다.

 

맹추위 속에서도 사랑하는 남자와 운명을 함께 했던 청산리 아낙들, 일제와 싸우기 위해 중국군에 입대해 폭탄과 함께 사라져간 청년들, 끝내 포기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이어갔던 교육자들, 마침내 밟은 고국 땅에 남의 나라 국기가 올라가는 걸 보며 눈물을 뿌리던 아저씨들,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또다시 분단되기까지 제거 당한 지도자들, 일본군이 아니라 국군에게 총 맞아 죽은 죄없는 사람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목숨을 버렸던 노가다 선배들, 국가의 잔인함에 항의하다 죽어간 학생들. 그 수많은 사연 속엔 울컥 쏟아지는 눈물과 가슴이 끓어오르는 호연지기가 종합선물세트로 들어있다.

 

 

< 신간회 안동지회  >

 

 

4. 시간은 언제나 또 다른 화음으로 연주된다. 때론 아름다운 소리로, 때론 추한 불협화음으로. 오늘의 불안이 클라이맥스의 감동을 위한 절묘한 장치였는지 아닌지는 노래가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연주했던 선율에 삑사리 하나씩 얹어가며 또 하루가 흐른다. 먼 훗날 돌아보면 악보 참 어지럽겠으나, 그건 반드시 같지 않은 음악이리라.

 

역사는 시대를 파악하기 위한 인식틀 이전에 탁월한 음악이고, 소설이고, 영화다. 가장 감동적인 스토리텔링이다.

 


 

 

 

  1. 김 호근( 浩根 書堂 ) 2016.01.05 20:05

    역사는 공짜로 세워 지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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